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가 기도하기를 포기할 만한 이유를 들자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기도를 그만 하고 싶습니다. 기도하고 바라는 내 속마음을 몰라주고 전혀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정말이지 기도할 맛이 나지를 않습니다. 몰라주는 정도라면 좋은 겁니다. 오히려 기도할수록 나에게 더 깊은 상처만 주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을 위해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사사였고 선지자였고 제사장이었습니다. 세 직무를 모두 훌륭하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내가 구한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이 그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기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태생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그가 하나님 앞에서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사무엘에게도 기도를 포기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었습니다.기도를 포기해도 좋을 만한 이유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이는 지금 은퇴할 나이입니다.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이제는 은퇴선언을 하고 있는 때입니다. 마지막 고별설교와 같은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한 평생 기도했으면 이제 다 했지 은퇴하고서도 그렇게 꼭 기도해야 하나? 이제 그만 하면 됐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쉬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지금 이 순간에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 기도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목회자 중보기도 모임을 하는데 그 중에 반은 은퇴하신 목사님부부이십니다. 이분들을 보면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이분들도 쉴만한 분들입니다. 현역에서 열심히 일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은퇴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제주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더욱 열심을 내시는 겁니다. 저는 그분들의 열심에 비하면 아주 비할 바가 못됩니다. 항상 제일 일찍 오시는 분은 보면 가장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이 먼저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은퇴하였을 지라도 기도에서만은 제일 열심을 내시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담임목사를 위한 중보기도 모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기에 은퇴하신 권사님들이 얼마나 잘해주시는 지 모릅니다. 가끔 제가 못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리를 지켜 주시고 기도하시는 분은 은퇴하신 권사님이신 겁니다. 물론 은퇴하지 않으신 분들 열심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은퇴하셨어도 기도에는 전혀 지치지 않으시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것을 본받아 우리 선흘중앙교회는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무엘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는데도 와서 불만입니다. 와서 이제는 사무엘님 당신은 나이가 많아 은퇴하실 때가 되셨고 당신의 아들들은 영 잘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그런 것처럼 왕을 세워서 다스리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백성들의 이런 요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치 않는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렇게도 기도하지만 전혀 믿음이 자라지 않고 전혀 나아지질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하면 할수록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무엘 마음이 얼마나 그들로 인해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사무엘도 그러고 보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포기할 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나에게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영 거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무엘은 이때 하나님을 붙듭니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신실하심을 붙듭니다. 소망을 가집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무엘이 다른 사람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 그저 낙낙한 사람 같다고 생각합니까? 왜 사무엘이라고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왜 사무엘이라고 속이 까맣게 타지 않겠습니까? 왜 사무엘이라고 상처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무엘은 무엇을 붙들고 기도해야 할 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자기가 기도하는 이유를 우선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 크신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 붙든 겁니다. 그래서 기도를 포기할 수 있는 데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포기할 만큼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님 말씀하셨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내 자신을 치고 내 자신을 죽이고 주님을 따라 기도하겠다고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선언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로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도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 바쁘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속상해서 기도하기를 포기하고 싶더라도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 예수를 믿는 여러분은 기도하는 편을 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무엘과 같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