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의 마지막 장은 사랑으로 충만한 두 사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겪었으며 그 위기는 두 사람을 더욱 온전한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시험된 사랑은 두 사람을 향기나는 동산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동산에 서로를 기대어 앉아 그들 앞에 펼쳐진 사랑의 풍성한 열매와 기쁨을 바라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사랑의 동산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동산에서는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앞에 풍성한 열매와 기쁨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있는 집이 사랑의 동산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의 동산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솔로몬 왕이 아내 된 술람미 여인과 함께 그 동산에 있습니다. 여러분 솔로몬 왕이라면 왕궁에서 아내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왕궁이 아니라 동산에서 가장 행복해 합니다. 솔로몬은 어쩌면 이것을 대조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왕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산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너 왕궁에 거주하는 자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했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에 하나 뿐인 사랑, 솔로몬의 행복은 왕궁에 거주하는 자가 아니라 동산에 거주하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동산 같아도 왕궁보다 나은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동산은 왕궁보다 나은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왕궁처럼 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사랑의 동산이 되기를 바라야 할 줄 압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줄 압니다. “어떻게 너는 그렇게 행복해? 어떻게 그렇게 너는 기쁘게 살아?”사람들이 우리의 가정을 보면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면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왕궁에 살아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동산에서 행복에 겨워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에게 “내가 듣게 하려무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사랑의 주님은 우리의 음성 듣기를 원하고 원하십니다. 어떤 음성이겠습니까? 사랑의 동산에서 기뻐하는 음성입니다. 사랑의 동산에서 만족해 하는 음성입니다. 사랑의 동산에서 사랑하는 음성입니다. 이런 음성이 오늘도 우리 선흘중앙교회 속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 들려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