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로 무리 수만 명이 모였고 서로 밟힐 만큼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수만 명 속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2절 말씀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무리 수만 명이면 적은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을 주시는 무리는 적은 무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무리는 적은 무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적어도 주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것이 축복인줄 압니다. 우리는 무리 수만명이 모이고 밟힐 만큼 모이는 것을 보면 거기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그럽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와 다릅니다. 주님은 “적은 무리여 안심하라” 말씀합니다.
안심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에 모이는 수가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을 줄 압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가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을 줄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염려하던 것에서 염려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동안 추구했던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바라시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고 4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불이 우리에게 붙었으면 주님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불이 우리에게 붙게 되면 주님이 고난 받으신 것처럼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이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의 불길 속에서도 우리는 살게 될 줄 압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받을 세례가 있는데 주님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답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에 주님의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 될 줄 압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말씀을 힘입어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님의 옷을 입혀 주셨으므로 옛 것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먼저 주님과 함께 죽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