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각별하게 주의시키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우리가 죄 가운데 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죄를 짓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죄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늘 있다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의를 하지 않으면 거기에 들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출입을 주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 주님과 동행하십시다. 주님과 함께 하면 죄가 가까이 못합니다. 우리가 죄에 들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는 이유를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화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화입니까?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당시 이런 형벌이 로마의 죄수에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또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형벌을 받는 사람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만일 로마시대에 산다고 해 봅시다. 우리에게 어떤 죄 지은 일이 드러나서 형 집행을 받았습니다. 그 형벌로 사람들이 우리 목에 연자 맷돌을 멥니다. 그리고 우리를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서 거기에 바다에 집어 넣는다고 해 봅시다. 정말 무서운 형벌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형벌 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낫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보다 낫다는 말씀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죄를 짓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죄를 짓는 일이 얼마나 우리에게 화인지 죄를 짓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화인지를 보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3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경고하고”라는 말씀은 “책망하고”라고 보셔도 됩니다. 참고 넘기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다. 사랑 가운데 책망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회개에 이르는 것이 최선입니다. 용서가 최선입니다. 용서한다는 말은 멀리 옮겨서 치워버린다는 뜻입니다. 형제가 나에게 어떤 잘못을 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한다는 것은 그에 관련한 죄와 죄책을 모두 멀리 치워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멀리 옮기시고 생명을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십시다. 이 말씀대로 주님 안에서 죄를 다스리는 삶을 사십시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주님이 화로다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복으로 여기고 주님이 복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화로 여겨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눈을 바로 보게 하시고 주의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