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라고 하는 마을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내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얼마나 기쁘고 힘이 날 일입니까? 하지만 두 제자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동행하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하였던 두 제자의 얼굴빛이 어떠했습니까? 슬픈 빛이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얼굴빛이 왜 이렇게 슬픈 빛을 띠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21절에 나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렇게 바라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얼굴에 슬픈 빛을 띠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들의 얼굴빛이 바뀌나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바뀝니다.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영광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들 마음에 깨달아 질 때에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슬픈 빛을 띠었던 제자들의 얼굴이 큰 기쁨으로 바뀐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 52절 53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했습니다. 얼굴에 슬픈 빛을 띠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로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이제 더 이상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기쁨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가던 그들의 발걸음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늘 성전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길에서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주님이 들으십니다. 우리의 얼굴빛을 주님이 살펴 주십니다. 우리의 눈이 어둡지 아니한지 살펴 볼 일입니다. 우리의 얼굴빛이 슬픔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은지 살펴 볼 일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요.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요. 주님과 함께 기쁘게 이 길을 가면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고 주님의 죽으심을 오시는 그 날까지 증거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아 알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과 함께 기쁘게 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얼굴을 살펴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주님의 십자가가 언제나 있게 하시고 주님의 생명의 능력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