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평강을 위하여 오셨고 두 번째는 믿음을 위하여 오셨다면 세 번째는 사명을 위해 오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던 제자들은 초점 잃은 사람처럼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 알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여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물고기 잡으러 나갔습니다. 바로 이 때 주님께서 이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 세 번째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베드로와 많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독 베드로의 이름만 자주 나오고 있고 이야기의 흐름도 베드로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이제는 무엇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찾아오시고 주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여 넘어질 때에 주님께서 우리 곁에 찾아 오시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시고 우리를 섬겨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라” 하고 알아 차렸던 것처럼 우리의 눈도 주님을 알아 차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여 넘어졌을 때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이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 요한의 눈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세 번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이 세 번의 물음을 통해서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대답할 때마다 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에는 베드로는 마음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호언장담 했다가 주님을 부인했던 자신을 이제는 자기도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럴 때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 것이죠.
이렇게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후에 “나를 따르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은혜도 귀히 여기겠지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더욱 주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를 따르라”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아십니다. 인도하십니다. “나를 따르라”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앞서 행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남은 여정을 가장 든든하게 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곁에 오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나를 따르라”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의 음성 듣고 주님을 바라보시며 주님과 함께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여 넘어질 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다시 주님 앞에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