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음 가짐과 함께 그 여정이 나와 있습니다.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여정이 오늘 같으면 일도 아니겠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배로 가는데 그 여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야말로 길고도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한 번에 가는 뱃편은 없었습니다. 바울은 최대한 지체하지 않고 가려고 했으나 오늘 기록된 중간 경유지만 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틑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갈아 탑니다. 구브로를 지나 수리아로 향하여 가는데 두로에 상륙하여 배의 짐을 풀고 이레를 머물렀습니다. 여드레 만에 떠나는데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다시 거기서 하루를 머물렀다가 이튿날 다시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또 머물고 다시 여장을 꾸려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간에 한 두 군데만 경유해도 힘이 듭니다. 그리고 배로 가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바울과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은 이런 길고도 힘든 여정을 군말 없이 이어갔던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나아갈 때 우리는 힘이 드는 것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들고 어려운 길을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며 자원함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감당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바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일들이 중간 중간에 있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물 때에 거기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갈 길을 계속 갔던 것이죠.
또 가이사랴에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머무를 때에도 그랬습니다. 아가보라고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합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이 말을 들은 바울의 동행들이 바울을 가지 말도록 만류하였습니다.
이럴 때에도 바울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명자의 일사각오의 마음가짐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7절 18절에 말씀하셨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사도바울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주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버리는 일사각오의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뜨거운 사랑은 바울 만 아니라 바울을 맞이하는 제자들 가운데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과 일행이 숙박한 곳은 제자들의 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내주었습니다. 작별할 때는 얼마나 뜨거운 기도가 있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일사각오의 뜨거운 사랑과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자로 우리 자신을 드리도록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여정이 쉽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고 갈 길을 인도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오늘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뜨겁게 타오르도록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