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는 바울을 보여 줍니다. 바울의 변명의 요점이 8절에 나옵니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했습니다. 보십시오. “율법이나 성전이나” 이것은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였습니다. “가이사에게나” 이것은 당시 로마제국에 속한 사람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종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두 깨끗하다고 자기를 변명합니다.
이와 같이 믿는 우리들에게는 불의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똑 같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잘 하는데 밖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하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살아가는 것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도 교회안에서도 동일하게 불의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사랑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인데 그럴 수밖에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렇게 고발을 당하고 왜 이렇게 죽음을 무릎쓰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 때문이지요. 오늘 본문 18절 19절에 베스도의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했습니다. 베스도가 생각할 때에 바울에게 무슨 큰 잘못이라도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살려 둘 자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고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베스도가 살펴보니까 그런 일은 하나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 나온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복음 외에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살아 있다는 복음입니다.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복음입니다.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받는 고난을 성경은 의를 위한 고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복이라 말씀하신 것 중에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하셨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고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의를 위한 고난은 기쁘게 받더라도 불의 때문에 고난 받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배웁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도 기쁘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 의탁합니다. 우리를 주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진리 안에서 행하게 하셔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