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로마교회에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갈등의 요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떤 날을 중히 여기고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서 갈등입니다. 이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성도들 간에 화평이 깨어지고 그렇게 되니 하나님 나라의 사업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기를 먹어도 된다.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어떤 날은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할 것을 말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8절 9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의 판단이나 우리의 생각보다 누구의 판단과 누구의 생각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판단과 주님의 뜻을 따라야 맞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판단과 주님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주님은 아무도 판단하면서 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비판하거나 업신여김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까? 죽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랑하신 형제를 우리가 판단하고 업신여기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니 주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 앞에 거치는 것을 두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도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드리도록 합시다. 하나님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언제나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로 주와 함께 살게 하셨으니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니 우리가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 앞에 거치는 것을 놓지 않도록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오늘 하루도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