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결혼에 대한 가르침이 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가 결혼을 해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또 이와 반대로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가 불신 남편 불신 아내와 이혼을 하고 주님만 바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에 관련해서 주님의 명령과 또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결혼의 문제에 대해서 주님의 명령과 사도바울의 의견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또 결혼하는 것도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신 남편이 이혼하려고 하지도 않는데 이혼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반대로 불신 아내를 둔 남편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서 사도바울은 보다 더 넓게 이야기 합니다. 할례자로서 부름을 받았으면 무할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할례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또 종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종이라고 해서 염려하지 말고 자유인으로 있을 때 부름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23절 24절에 이렇게 결론 짓고 있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만 해도 사회적인 신분에서 종이나 노예와 같은 제도가 받아들여지던 때였습니다. 이런 때에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자유인도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이 말씀이 얼마나 그들을 하나가 되게 하였겠습니까? 요즘에는 만인이 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능력 등과 같은 면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처지와 신분 지위를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 보이지 않아도 사회적인 계층이 형성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목표를 새롭게 해 줍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처지와 신분이나 지위를 더 나은 데로 올라가려는 목표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새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새 목표 아래에 서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을 바라는 저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처지나 상황 때문에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데에 마음을 두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하신 말씀이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어떠하든지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으므로 이로 인하여 우리가 기뻐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이 우리 기쁨의 근원이 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