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사도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는 지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우상의 도시라고 할 만큼 당시에 우상숭배가 도시 전체의 분위기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우상의 제물로 쓰인 고기들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문제가 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먹어도 상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성도로서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지식을 먼저 말하고 그 지식보다 탁월한 사랑의 원리를 말합니다. 지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 주가 계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지음을 받았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우상의 제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식으로만 보면 먹어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누가 이 자유를 이용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믿음이 연약한 지체가 보았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이 지체도 그것을 먹게 될텐데 그렇게 할 때에 아직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그 지체는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해서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것을 말하면서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했습니다.
믿음의 자유는 사랑할 자유입니다. 내 자유가 오히려 지체가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자유라면 사랑 때문에 그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 지체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내 자유로 형제를 세우면 세웠지 형제가 거치게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자유가 사랑할 자유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의 덕 세움을 위하여 내 자유를 포기할 수도 있는 자유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있는 자유가 다른 사람의 덕 세움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기를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의 덕 세움을 위하여 나 자신을 절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이 덕 세움을 얻게 하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