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는 사도바울이 자기 자신이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을 가지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권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권리를 주의 복음을 위하여 다 쓰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 땅의 상급이 아니라 하늘의 상급, 곧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상급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은 또한 자신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같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먼저 이야기 합니다. 1절입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라고 말씀합니다. “자유인”이라는 것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유시민이라는 말도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이지만 그 자유를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절제하는 것을 뒤에 이야기 하는데요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했습니다. 율법에 속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율법에서 자유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가진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또한 그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자신의 자유인의 권리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라고 말합니다. 사도로서 마땅한 권리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해 그 권리도 내려 놓았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을 대적하고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어떤 자들이 사도바울이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자기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사도바울은 사도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로 하기 위해서 사도의 권리를 내려 놓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그렇게 할 수 도 있었지만 그 권리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있는 권리마저도 복음을 위해서 내려 놓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자랑이 오직 자기를 부르신 그리스도 예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실 상급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가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랑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또 우리의 자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도 부름의 상을 얻도록 이기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며 승리자의 면류관을 쓰도록 달음질하도록 합시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랑이 주께만 있는 줄 압니다. 우리의 자랑이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일깨워서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게 하옵소서.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절제하는 것이 우리의 상급이 주님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되게 하셔서 주 안에서 담대함과 큰 확신을 얻도록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