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방언과 예언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두가지 은사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예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방언을 말하면서 자신을 신령한 자로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예배로 모일 때마다 서로 경쟁하듯이 방언을 말하면서 신령한 자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가다가는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해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썼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했습니다. 방언이 신령한 것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을 신령한 것으로 인정을 하지만 신령한 것 위에 사랑을 추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교회의 유익을 구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추구할 때에 방언은 자기의 유익을 주고 예언은 교회의 유익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방언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방언 말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분위기를 예언쪽으로 돌려 놓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언에 있어서도 차례를 따라서 하도록 합니다. 질서를 지켜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배를 주관하시는 분이 또한 한 분 주님이심을 인정하여야 됩니다. 주님을 인정하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자신이 신령한 자임을 자처하면서 예배로 모일 때에 절제하지 못하고 방언을 말하고 여기 저기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31절에서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씩 하나씩이라는 말씀은 차례를 따라 질서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39절 40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요즘에는 아시는 것처럼 예배시간에 두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있고 이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예언을 하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서 항상 교회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해 자신을 절제하는 것을 배워서 행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예배를 주관하시는 분이 한 분 주님이신 줄을 늘 인정하고 주님께 순종함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예배에는 믿는 자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도 있었고 믿음에 어린 아이 수준인 사람도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주님 중심 말씀중심으로 품위 있고 질서 있는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고 모든 성도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 모든 일에 주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