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사도바울의 넘치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넘치는 사랑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배우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에게 있는 넘치는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자를 기다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노니“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곧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할 말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나아갈 수 있지만 나아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뒤에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랑하는 고린도교회 성도가 자신의 근심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기쁨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에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인지 좀 애매하게 들립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런 뜻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근심하게 할 바에는 차라리 나는 참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나 사이에 기쁨이 다시 회복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들은 나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기쁨이 될 사람들이 근심이 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또 다시 말씀 드리자면 “나의 기쁨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근심중에 나가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면 여러분에게 근심이 있을 테인데 여러분이 고통을 받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나를 기쁘게 할 자인 여러분이 나에게 근심이 되는 것 밖에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쁨이 될 사람들인데 서로 근심이 되면 누가 좋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는 내가 기다리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기다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눈물을 전합니다.
기다림과 눈물이 전해질 때 넘치는 사랑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초코렛을 주고 사탕을 주고 선물을 주는 것도 좋지만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이를 위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눈물로 나아갈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넘치는 사랑을 배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기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게 하시고 사랑을 따라 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위해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넘치는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로 복음 안에 굳게 서서 걸어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