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1절에 나오고 8절에 나오고 16절에 나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할 일이 여러 번 있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사도바울이 낙심할 만한 일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우리도 읽고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후서의 내용 가운데서 우리는 더욱 그를 낙심하게 할 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게 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위기에 휩싸였었습니다. 급히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그들을 만나서 바로잡으려 해 보았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근심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 사이에 신뢰의 관계가 깨어지고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야 말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을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문제는 곧바로 복음에 이어집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 고린도교회가 굳게 서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야 말로 큰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역자로서 사도바울은 얼마든지 낙심이 될 만도 하였습니다.
이것만입니까? 사도바울이 얼마나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까? 또 죽기에 이른 적도 몇 번입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런 모든 환난에 대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싸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낙심하게 만드는 환난이 큰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을 능가하는 큰 것이 사도바울에게 있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의의 직분, 사람을 살리는 직분, 복음의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사랑이 모든 환난에도 낙심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는 보배를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보배를 질그릇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그릇에 두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 낙심하지 않을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광의 소망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입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겉사람은 모두 낡아져 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안에 있는 영광의 소망의 빛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에게 있었던 낙심보다 더 큰 은혜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도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의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빛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날이 갈수록 새롭고 뚜렷해집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만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이런 은혜를 붙들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은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낙심하기 쉬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께서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먼저 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은혜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영광의 소망으로 우리를 붙들어 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