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복종과 순종 관용과 온유함을 나타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종과 순종은 위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향해 나타내야 할 것으로 나옵니다. 그에 비하여 관용과 온유함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나타내야 할 것으로 나옵니다.
이교도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당시 그레데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종과 순종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 복종과 순종을 할 뿐 아니라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아마 이런 가르침이 통하는 데는 그레데 섬에서 교회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비방한다는 말은 모독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용하는 것은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나타낸다는 것은 한두 번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렇게 보이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이 그레데 섬에 사는 사람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것에서 거리가 멀게 살았던 사람들이었다고 인정합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했습니다.
우리도 그레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복종과 순종과 관용과 온유함과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절에서 “우리도 전에는” 이라고 말했지만 4절에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라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짧게 말한 후에 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매우 놀라운 변화를 말씀합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8절에 결론적으로 말씀합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르심을 따라 오늘도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이신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를 향한 주님의 자비와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과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않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로 주 안에서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게 하시고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