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 잠언의 말씀들이 솔로몬의 잠언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시작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솔로몬 왕 이후에 있었던 왕들 가운데 선한 왕으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는 것을 보면 히스기야가 솔로몬의 잠언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주의하였던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솔로몬이 살아서 히스기야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 그 모습을 보면서 매우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이런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던 지혜로운 아들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 요한 삼서에서 사도 요한도 이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4절)”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사도 요한이 기뻐하였던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기쁨으로 가득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21절에 원수 사랑에 대해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원수가 배고파하든지 말든지 목말라 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원수를 망하게 하려고 하지요. 배고프게 만들려고 하는게 인지상정이지요. 목 마르게 하려는 것이 원수에 대한 인지상정입니다. 그냥 원수를 가만히 놔두는 것도 상당한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가 아니에요.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라 말씀합니다.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원수를 부끄럽게 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원수에게 나 잘난 것을 나의 의를 나타내려는 뜻도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 다음 22절에 나오는 “핀 숯”이라는 말씀이 그런 뜻을 보여 줍니다.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핀 숯을 머리에 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깜짝 놀라겠어요? 그렇게 원수의 마음이 깨어지게 만들고 그 양심이 깨어나게 만들고 회개로 인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겁니다.
원수를 정복하는 길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복수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정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믿는 자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잠언이 가르치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기쁨의 길이요 하나님께 상 받는 길입니다. 물론 어렵지요.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줄 압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덧입어 살아가기 위하여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