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를 가깝게 만들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랑도 과거의 사랑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사람이 결혼 후에 사랑이 변질되고 사랑이 변하여 사랑의 위기를 맞이한 것을 보여줍니다. 둘이 “하나 되게 하는 사랑”이더니 이제는 “물러가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말씀합니다. 이전에는 조금만 사모하였어도 달려왔던 사랑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불러도 응답이 없구요 찾아도 만날 수 없는 물러가는 사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정작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아요. 행동은 그 반대로 나오는거에요. 마음은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지요. 그런데 상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참 말이 곱게 안나오는거에요. 좋게 해 줄려고 마음이 있다가도 확 해버리게 되는 거에요. 이렇게 될 때 어떻습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아요.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없어서는 못 살 것처럼 하더니 이런 일들로 서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면 서로를 멀리하게 됩니다. 어느새 사랑은 물러갑니다.
마음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 마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사실 말이 어떻게 나오느냐 행동이 어떻게 나오느냐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서로 인간관계에서 갈등이나 상처가 왜 생기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렇게 악의적으로 상처주려고 하지는 않을 거에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 반대로 나오고 행동이 반대로 나오니까 나중에는 “이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하는 한숨이 나오는 겁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부간에 어떤 지 한 번 돌아봅시다. 부모와 자녀간에 어떤 지 한 번 돌아봅시다.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지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지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니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할 줄 압니다. 사랑의 마음이 말과 행동에까지 이어지도록 능력있는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참 감사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사랑안에 회복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아가서는 부부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부부간에 사랑이 변한다 해도 그 사랑 안에는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화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술람미 여인은 물러간 사랑을 찾아 나섭니다. 뒤에 보면 솔로몬 왕도 사실은 그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붙든 것입니다. 그 사랑을 간절히 찾을 때에 다시금 나의 사랑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되새겨 봅니다. 사랑이 잠시 물러갔을 때 그 사랑의 진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항상 옆에 있으면 그 사랑의 진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귀한 줄 잊어버립니다. 한 번 사랑의 위기를 만나고나니 그 사랑이 그렇게 귀한 사랑이었음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이 사랑안에 더욱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그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욱 사모하게 되며 그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