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땅히 반환해야 할 것들을 반환하지 못하고도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정직하지 못하다. 우리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우리도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바로 알게 된다.
삭개오를 보면 알 수 있다. 삭개오는 주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정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름대로 스스로를 괜찮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세리장 노릇을 계속했을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예수님 앞에 설 때 삭개오는 자신을 바로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반환해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앞에서 삭개오가 입을 열어 한 말은 매우 적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 입으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였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이렇게 반환하였다.
율법은 남의 물건을 배상하려면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하라는 법이다. 그러나 삭개오는 율법보다 더 반환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했고 그렇게 했다. 그 배상을 말하기 전에 삭개오는 사랑과 정의와 긍휼을 먼저 말했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했다. 율법이 말하는 정의와 긍휼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런 일은 삭개오가 한 번도 그렇게 하려고 해 본 것이 아니다. 삭개오는 그동안 자기 나름대로 잘 살아 왔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 반환해야 할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반환했다.
삭개오의 반환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공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께 반환에 대한 말을 할 때 ‘서서’ 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삭개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고 말한대로 반환했다는 뜻이다. 남 몰래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렇게 반환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다. 남 몰래 반환하겠다는 말을 개인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알도록 반환한 것이다.
삭개오는 반환을 미루지 않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삭개오는 반환하였다. 말만하고 뒤로 미루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말함과 즉시 반환하였다. 삭개오는 ‘공개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반환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면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반환해야 할 것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삭개오처럼 반환해 보자. 그럴 때에 우리의 기도는 정직한 기도가 될 것이다. 삭개오는 그 후로 그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반환할 것을 반환하고 기도하자.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